Cultural Remains
		영암의 소중한 문화유산의 수집과 보존, 전시에 앞장서겠습니다.
4차 메뉴 정의
마한은 대체로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을 가리킨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마한 54소국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서 모두 합하면 10여 만 호(戶)가 된다고 한다.

각 소국에는 우두머리가 있는데, 세력의 대소에 따라 신지(臣智)·읍차(邑借)라 불렀다. 이들 소국은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심 읍락인 국읍(國邑)은 각 읍락간의 물자교역의 중심지이고, 국읍의 주수(主帥)는 대내외 교역활동을 장악함으로써 경제적인 측면에서 각 읍락을 통솔하고 유사시에는 군사활동의 지휘권까지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마한유물-철편,토제구멍단지,토제단지,토제민무늬항아리
마한 소국을 형성한 주체에 대해서는 마한족이라는 별개의 종족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이주 정착하여 성립시켰다고 보는 삼한이동설의 입장도 있으나, 대부분은 선주(先住) 토착집단의 점진적인 발전의 결과 삼한이 대두했다고 본다. 즉, BC 3,2세기 중남부 지역에 좁은놋단검[細形銅劍]문화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정치집단이 존재했는데, 더욱 선진적 정치집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충남·전라 지역에 밀도있게 분포함으로써 이들이 마한 소국의 상당 부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BC 1세기 이후 위씨조선계 유민과 문화의 유입, 철기의 보급, 부여계 유이민 집단의 정착 등의 정치 문화적 변화 속에서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됨에 따라 청동기문화 단계의 마한의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2세기 이후부터 백제가 마한을 완전히 통합할 때까지 마한 지역은 한강 유역의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와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세력권이 병존하는 상태였으며, 이후 백제국 중심의 소국연맹체가 점차 마한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편제 질서를 확립해간 것이다. 마한 54국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감해국(感奚國)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건마국(乾馬國) ·고랍국(古臘國) ·고리국(古離國) ·고비리국(古卑離國) ·고원국(古爰國) ·고탄자국(古誕者國) ·고포국(古蒲國) ·구로국(狗盧國)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 ·구소국(狗素國) ·구해국(狗奚國) ·내비리국(內卑離國) ·노람국(怒藍國) ·대석삭국(大石索國) ·막로국(莫盧國) ·만로국(萬盧國)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모수국(牟水國) ·목지국(目支國) ·백제국(伯濟國) ·벽비리국(辟卑離國) ·불미국(不彌國)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불운국(不雲國) ·비리국(卑離國) ·비미국(卑彌國) ·사로국(駟盧國) ·상외국(桑外國) ·소석삭국(小石索國) ·소위건국(素謂乾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신분활국(臣濆活國) ·신소도국(臣蘇塗國) ·신운신국(臣雲新國) ·신흔국(臣國) ·아림국(兒林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염로국(冉路國)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원양국(爰襄國) ·원지국(爰池國) ·일난국(一難國) ·일리국(一離國) ·일화국(日華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지반국(支半國) ·지침국(支侵國) ·첩로국(捷盧國) ·초리국(楚離國)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 ·치리국국(致利鞠國).
[두산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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